Women TechMakers Seoul에서 “여자답게 도전하기” 발표를 했다.
“여자”라는 편견 때문에 내가 살면서 계속 도전해왔고,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한 발표였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더욱 더 도전하시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구글 여성 행사에서 패널 토크에 참여해 본 적이나, 리쿠르팅 행사에 간 적은 있었으나 이런 컨퍼런스에서 발표하는 건 처음이었다.
패널 토크에서 얘기했던 것들이 반응이 좋아서, 그런 걸 조금 확장시켜서 발표해 볼 요량으로 참여했다.
내가 여기서 이야기 했던 것은 다음과 같았다.
- 나 자신을 믿기
-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기
- 하찮은 것 하기
- 실패하기
- 연대하기
40분이나 발표하는 게 처음이어서 발표를 맡기로 한 시점부터 스크립트를 꽤 오래 준비했다.
대강의 틀은 한달 전에 완성해놓고, 최근 2주간 세부 내용을 놓고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지 고민하면서 보냈던 것 같다.
직전 한 주 동안은 발표 자료에 따라서 혼자 발표 연습도 하고, 스크립트를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며 피드백도 부탁했었다.
전날에는 회사 분들에게 부탁해서 시연도 했었다.
대략 35분 정도의 시간이 나왔길래, 내용을 좀 더 보충했고, 긴장해서 말이 빨라지는 걸 생각하면 딱 맞을 거라고 예상하며 준비를 마쳤다.
당일이 되자 굉장히 긴장되었다.
두어번 스크립트를 읽은 뒤에는 달리 더 할 게 없는 듯 해서, 다른 세션을 들으러 다녔는데 긴장되어서 손이 얼고 식은땀이 나고 심박이 올라가는 걸 느꼈다.
목소리가 떨릴까봐 좀 걱정이 많이 됐다.
시간이 되어서 발표를 시작하니, 생각보다 목소리가 괜찮은 걸 느꼈다.
청중 분위기가 굉장히 좋아서 긴장이 풀리는 것도 느껴졌다.
그런데 강연 한참 중간에 흐름이 끊겨서 스크립트를 넘기려고 하는데 스크롤이 안 됐다.
이 때 잠깐 멈추더라도 스크립트를 좀 봤어야 했는데 스크립트를 안 보고 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기억에 의존해서 이야기를 하다보니 중요한 내용들이 꽤나 빠지는 걸 느꼈다.
그렇게 발표를 마치고 나니 예상했던 35분보다 훨씬 이른 25분이었다.
약간 패닉했지만 조금 이르게 질문 세션을 시작했다.
사람 수가 꽤 많기 때문에, 질문이 잘 이루어지기는 힘들 것 같아 sli.do를 준비해뒀었다.
예전에 어떤 발표를 들으러 갔을 때, 이 플랫폼을 통해서 질문이 이루어졌었는데, 굉장히 반응도 좋고 신선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사람들이 많은 질문을 해 주었고, 강연에서 아쉬웠고 더 듣고 싶으셨던 부분에 대해 질문해주셔서 보완할 수 있었다.
끝나고 나서 알았던 건데, 이렇게 질문이 진행되는 게 유튜브 라이브를 직접 보는 것 같았다는 질문(?)이 있었다.
어느 정도 비슷한 것 같아 박장대소했다.
한편 어떻게 구글 입사 하게 된 건지 알고 싶어서 왔는데, 너무 신세한탄 위주로 흘러가서 아쉬웠단 말도 있었다.
내가 어느정도 걱정하기도 했던 부분이어서, ‘역시나-‘ 싶은 마음과 동시에 ‘더 잘 할 수 있었는데’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발표가 끝난 뒤에는 준비한 만큼 다 보여주지 못했다는 생각도 들고, 너무 빨리 끝나서 시간을 들여 와주신 분들께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잠깐이지만 앞으론 발표를 하지 말까, 하는 생각도 스쳐 지나갔었다.
하지만 오늘 열심히 실패하고, 하찮아지자고 주장해놓고 나조차도 다시 실패하는 게 두려워서 또 도전하지 않겠다니!
지나치게 자기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지 않기로 했다.
다음에 발표를 하게 된다면, “하찮아지자, 실패하자”는 부분에 대해서 잘 풀어 이야기하고 싶다.
결국 내가 나의 실패 이야기를 계속 계속 떠들었던 건, ‘자, 봐요, 저도 이렇게 하찮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역시 사람의 마음은 알기 힘들고, 나 자신의 마음조차도 예외는 없어서, 발표를 마치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자주, 어떤 사람의 인생을 이야기할 때 그 사람이 평생 겪어왔을 하찮은 실패들은 생략되는 것 같다.
물론 하찮은 실패는, 정말로 하찮기 때문에 그 인물의 인생을 극적으로 그리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게 생략된 하찮음 때문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하찮은 실패가 없어야 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다.
게다가, 발언권 뿐만 아니라 실패할 기회도 잘 주어지지 않은 여성들에게는, 실패를 계속 딛고 일어나는 롤모델이 더욱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또, 다음 번에 발표 중간에 실수나 문제가 있을 때는 빠르고 뻔뻔하게 해결한 뒤 발표를 계속해야겠다.
행사 뒤에 스탭 및 발표자 분들이랑 식사하는 도중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발표가 너무 일찍 끝난 경우에는 “어? 시간이 많이 남았네요? 자료를 한 번 더 보면서 요약합시다.”같은 식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물론 청중들도 너무 빨리 발표가 끝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죠? 빨리 끝낼게요~”하는 것보다는 자료를 다시 훑으며 그냥 지나간 부분을 보충하는 게 조금이나마 발표의 완성도를 높일 가능성이 있다.
이런 식으로 이미 문제 상황이 생겼을 때, 빠르게 인정하고 어떻게든 수습하는 자세를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굵직한 메시지를 두고 이야기하는 건 좋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 중간에 슬라이드를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스크립트가 없었더라도, 중간에 리마인드할 부분이 있었다면 기억해내기가 수월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더욱 구체화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발표에서는 “용기를 주고 싶어!!”라는 마음이 너무 강한 나머지 메시지를 잘 전달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구체적으로, 한 줄로 설명되는 간결한 메시지를 정하고 시작해야겠다.
아쉬운 마음이 많이 남았지만, 그 이상으로 나에게 위안이 되면서 힘이 되는 발표였다.
다음에 기회가 또 온다면, 더 좋은 발표를 하고 싶다.
아래는 이번 발표의 계기가 된 패널 토크에서 내가 이야기할 부분에 대해 준비했던 스크립트다.
컴퓨터공학 공부를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나는 진로 고민을 오래 한 편이다.
고등학교는 자연계로 다니다가, 심리학과가 가고 싶어져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인문계열 수능 공부를 해서 대학을 갔다.
심리학과가 있는 사회과학계열으로 입학했는데, 생각한 것과 달라서 방황하다가 부모님의 강한 권유로 고시를 시작했다.
하지만 내가 강하게 하고 싶은 일이 아니다보니 의욕도 잘 생기지 않았고, ‘이게 맞는 길일까?’하고 계속 고민하게 되었다.
남들은 합격만 바라보고 공부하는데 ‘나는 이 길이 맞나’라고 고민하고 있으니 될 턱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누가 파이썬을 추천해줘서 공부를 시작했고, 재미있어서 그대로 복수전공을 시작하고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다.
본인께서 생각하시는, 엔지니어로 일하는 장단점은 무엇인가요?
컴퓨터 공학 분야 한정으로 생각하자면, 끝없이 공부해야 하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다.
진입 장벽도 낮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인터넷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다.
컴퓨터 공학은 학문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영역에서도 발전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그런데 이런 이론/기술적 성과가 대부분 공개되어 있다.
장점이자 단점.
요즘처럼 고용 안정성이 낮은 시기에 자신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하지만 쏟아지는 정보 속에서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취사 선택해서 꾸준히 공부하기가 쉽지 않다.
(여학생으로서, 또는 이와 무관하게) 컴퓨터공학 전공하면서 어려운 점이 무엇이었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전형적’이지 않았던 점.
복수전공생이고, 여자고, 나이도 많았다.
다들 잘 아시다시피 잘 하는 친구들과 함께 공부할 때 더 빨리, 많이 배울 수 있다.
나는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거의 없었고, 처음 일 년 정도는 상당히 힘들었던 것 같다.
그 일 년 동안에는 컴퓨터 공학부 내 동아리를 여러 개 들었고,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개발 공부를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금의 나는 나의 친구들이 만들어 낸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 소프트웨어 캠프와 우먼 테크메이커스 장학생으로 참여한 경험이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어떤 도움을 주었나요?
처음에 나한테 있어서 구글은 ‘범접할 수 없’고, ‘절대 못 갈 것 같’고, ‘천재들만 가득할 것 같’은 곳이었다.
어쩐지 구글 직원은 평범한 사람과는 한참 동떨어진 다른 존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면서, 구글에 지원할 생각조차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구글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나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서 가장 도움이 됐던 건, 어떤 세션이었는지 구체적으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구글에 지원한 남성과 여성들에 대한 통계 자료를 보여주시면서,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과소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는 얘기를 하시면서
“여러분도 할 수 있어요. 조금 더 자신감을 가지세요. 까짓것 떨어지면 어때요. 더 많이 도전해야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어요”
라는 이야기를 해 주셨었다.
그게 마음에 항상 남아서, 그저 ‘안 될 것’이 두려워서 하지 않았던 것들을 “실패하면 어때! 한 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도전할 수 있게 해줬다.
여기 계신 여학생 분들께, 왜 컴퓨터공학을 계속 공부해야 하는지 설득해주세요.
사실 반드시 컴퓨터공학이어야만 하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 더 하고 싶은 것, 더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찾아서 그 분야로 옮길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지만 문득 힘들고, 내가 재능 없다고 느껴지고, 그래서 포기하고 싶어진다면 제가 들었던 말을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
“많은 여학생들이 자신의 능력을 과소평가한다. 당신은 못나지 않았다”.
누구나 실패한다.
만약 지금 실패하면 절대 안 될 상황이 아니라면 많이 도전하고, 많이 실패해보라.
잘 된다면 좋은 것이고,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다음 도전을 위한 디딤돌이 될 것이다.